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제퍼슨 (문단 편집) == 가족관계 == || [[파일:external/www.firstladies.org/8.jpg]] || || 제퍼슨의 첫째 딸 마사 제퍼슨 랜돌프의 초상화[* 모친인 마사 웨일스 스켈턴 제퍼슨은 초상화가 없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2/Martha_Jefferson.jpg|실루엣]]만이 남아있다. 떠도는 초상화는 몇 있는데 다 이 딸 마사 제퍼슨 랜돌프의 모습을 참고한 상상화로 추정된다. 다만 실제로 마사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전해진다.] || 1772년, 8촌지간인 마사 스켈턴 부인[* 결혼 전 성은 웨일스. 변호사이자 농장주인 존 웨일스의 딸이었다. 1766년 18살의 나이로 변호사 배서스트 스켈턴과 결혼하여 존이라는 아들을 두었으나 2년이 채 안 되어 남편이 사망하여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아들인 존마저 마사가 재혼하기 몇 개월 전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었다.]과 결혼하여 총 6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중 딸 2명, 마사와 메리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부부의 사이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전해지나 안타깝게도 마사는 마지막 아이를 낳은 지 4개월 만인 1782년 9월 6일, 난산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이는 제퍼슨을 큰 비탄에 빠지게 했다. 아내의 죽음 이후 3주 동안 서재에 틀어박혀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을 정도.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사는 임종 때 남편에게 자기가 죽은 뒤에도 재혼하지 않을 것을 부탁했고[* 남아있는 자녀들에게 새어머니가 생기는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사 본인이 새어머니들과 불편한 관계였던 경험이 있어서라고.] 그는 아내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에게 한 약속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후 제퍼슨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다만 외교관으로서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영국계 이탈리아인 화가 마리아 코스웨이 부인에게 진지한 연애 감정을 가진 적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마사 제퍼슨과의 결혼 당시 딸려온 마사의 이복여동생 겸 흑백혼혈 노예인 [[샐리 헤밍스]]와 아내 사후 오랫동안 내연 관계에 있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실제 샐리가 아버지가 불분명한 쿼터혼혈 아이들을 여러 명 낳은 건 사실이고,[* 실제 매디슨 헤밍스, 이스턴 헤밍스 등은 훗날 자기가 제퍼슨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스캔들이 터진 게 제퍼슨의 아내가 이미 죽은 후인지라 샐리가 죽은 제퍼슨의 아내 대신 제퍼슨의 정부 노릇을 했다는 건 당시부터 오랫동안 미국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 떡밥은 당시부터 정적들에게 회자되었는데, 제퍼슨 본인은 샐리의 아이들에 대한 정적들의 비난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ally-Hemings.png]] || || 샐리 헤밍스의 상상화[* 샐리 헤밍스는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다.] || 그렇게 제퍼슨 사후 묻히는가 싶었는데 이 떡밥은 20세기까지도 유지돼서 1990년대 들어선 후손들의 유전자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제퍼슨 가문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토마스 제퍼슨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측은 샐리 아이들의 아버지는 제퍼슨의 형제라고도 주장한다. DNA 검사가 샐리 후손들이 제퍼슨 집안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만을 밝혔을 뿐이지 제퍼슨 본인의 피를 직접 물려받았는지는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토마스 제퍼슨이 가장 유력한 아버지 후보인데, 제퍼슨 친척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살았고, 그러다보니 당시 샐리를 임신시킬 수 있는 제퍼슨은 확률상 샐리를 바로 옆에 뒀던 토머스 제퍼슨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샐리도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제퍼슨의 [[처제]]라는 점과 샐리의 어머니도 백인 혼혈[* 샐리의 조부모 4명 중 3명이 백인이었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인지 생전 모습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부도 하얀 축에 들었다고 한다.]이고 제퍼슨 장인의 몸종이었다. 골때리는건 첫 아이의 나이를 역산하면 샐리가 제퍼슨과 첫 성관계를 맺은 나이는 대략 10대 중반 쯤으로 추정된다. || [[파일:external/image.cine21.com/M0010037_poster_01.jpg]] || 샐리와 제퍼슨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5년작인 《대통령의 연인들》(Jefferson in Paris)[*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파리에 머물 때 얘기.]이란 작품이다.[* 실제 샐리처럼 혼혈인 [[탠디 뉴턴]]이 샐리 역을 맡았다. [[뱅상 카셀]]이 나오기도 하고 [[귀네스 팰트로]]도 나온다.] 영화는 샐리의 아들 매디슨 헤밍스가 부모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아내 사후 제퍼슨이 프랑스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앞서 언급한 샐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유부녀 화가인 마리아 코스웨이 부인과의 (실제로 있었던) 연애사도 다뤄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